장자의 나비
몇 년 전에 시댁이 있는 산골마을 너머 피서를 간 적이 있다. 시댁이 워낙 산골짜기라 더 깊이 피서를 할 만 한 곳이 있을까 의문스러웠다. 시어른들이 오르내리며 살던 곳이다. 세상 어느 곳보다 물 맑고 경관이 좋다고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는 이야기도 더러 들었다. 승용차가 겨우 지나 갈 수 있을 구불구불한 길이었다.
한여름 태양이 내리쪼이지만 시리다 못한 쪽빛물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하늘이었다. 매미들의 울음이 온 산을 진동하고 길가에 작은 꽃들과 무성한 풀더미 사이에 작은 벌레들의 합창은 아름다운 화음이 되어 힘든 걸음을 풀어주었다. 드디어 울창한 숲을 지나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는 마을에 들어섰다. 숲속이라 대나무들이 우거져 하늘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마을에 들어서는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릉도원이 여기인가! 오랜 기다림 끝에 찾은 마을이라서 그런지 점점 더 밝은 빛이 내 시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이런 깊은 산중에 마을이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아서인지, 또 마을이 워낙 밝아서인지 눈이 부셨다. 아늑하고 포근하다. 나의 첫 충격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마을에는 언제나 콸콸 솟아나온다는 샘물이 있다. 그 샘물을 마시면 영원히 젊어진다는 전설이 있을법한 샘이었다. 지금은 시댁 어른들이 가끔 집을 둘러보고 아랫마을로 가신다. 무너진 담장과 집이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돌과 사금파리, 칡넝쿨들이 칭칭 감겨 텅 빈 세월을 지키고 있었다. 예전에 이곳이 흙이 좋고 물이 좋아 도공들이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언덕배기 곳곳에 깨진 그릇들이 널브러져 있다
순간 무섬증이 왈칵 몸에 파고든다. 그때 어떤 분이 화물차를 타고 오더니 주인 계시느냐고 물었다. 시내에 갔다고 하니까 어떻게 아느냐고 한다. 나는 이집의 며느리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그 분은 집에 들어가는 듯했다. 나는 내 목적지대로 더 깊은 골을 찾아 걸어가다 보니 조금 전에 봤던 그 차가 올라온다. 어디까지 가느냐고 했다. 나는 산속에 있는 더 깊은 마을에 간다고 하니 자기네들도 그곳에 가니 타고 싶으면 타라고 했다. 사실은 걸어가고 싶었다. 걷는 것도 운치가 있을 것 같아서, 그런데 예전에 힘들게 걸었던 것이 생각나 염치불구하고 탔다. 이야기 하다 보니 내가 찾는 마을에 가고 그는 모처럼 고향에 간다고 했다. 예전에 그 마을에서 친구들과 학교도 다녔다고 했다. 이 마을이 면소재지가 있는 학교와 너무 멀리 떨어져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이나, 눈 오는 날의 땡땡이 치던 이야기며, 개울가에 멱을 감으면서 패를 갈라 놀던 이야기며, 눈 내린 겨울이면 아이들과 얼음 위에 지치도록 스케이트를 타던 이야기, 처녀들은 늦은 밤 김치서리와 화롯불에 밤을 구워서 먹었다고 웃는다. 어느새 마을에 도착했다. 여기서 마을 사람을 만나다니 내가 원했던 바이지만 설마 했다.
짙은 푸른 잎을 가진 나무와 풀숲에서는 잠자리가 나풀나풀 거렸다.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눈을 잠깐 감았다. 내 주위를 어른거리는 나비는 호랑나비다. 문득 장자의 호접몽이 생각났다. 내 눈앞에 있는 것이 호랑나비인가, 아니면 꿈속 호랑나비인가? 까치가 나뭇가지에서 푸드덕 날아올라 가지에 앉았다. 개울가에 발을 담갔다. 차가왔다. 더운 기운이 말끔히 싹 가셨다. 다행히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이곳은 두 분이 농사를 짓는데 아침에 왔다가 저녁에 시내로 돌아간다고들 했다.
그야말로 산골의 정겨운 모습이다. 매미가 맴맴 쉴 새 없이 운다. 눈을 감았다. 개울가 앞에 물푸레나무는 내가 자리 잡은 곳을 한층 시원하게했다. 눈을 감고 있으니 무릉도원에 온 것 같다. 아까 나를 태워 주신 분이 다시 왔다. 이리저리 쉴 자리를 찾다가 마땅한 곳을 못 찾았는가 보다. 물이 너무 깨끗했다. 1급수에만 산다는 가재와 다슬기, 피래미가 많았다. 잡았다가 풀어 주곤 그러기를 반복하였다
마침 하늘에는 전설 속에 살았다는 희고 큰 학같이 생긴 새가 내 주변에 맴돈다. 어디서 나비가 한 마리 날아든다. 나는 장자의 나비를 다시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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