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감상문, 책소개 , 리뷰..등등

이토록 멋진 문장이라면 ~ 독서감상문

반응형

이책의 저자 장석주는 날마다 읽고 쓰는 사람, 시인, 독서광 , 인문학 저술가, 정독도서관에서 시와 철학을 혼자 공부하던 스무살때 <월간문학>신인상을 받아 등단했다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하고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입선해 시와 비형을 겸엽해오고 있다. '고려원' 편집장을 거쳐 출판사'청하'를 세워 열다섯 해를 편집기획자로 일했다.



            독서감상문

도서명 이토록 멋진 문장이라면
지은이 장석주쓰고 엮음 출판사 추수밭


나는 이책을 필사한다. 그래서 나도 이 문장들을 나의 것으로 소화를 해서 온전한 나의 문장을 만들 것이다.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한 걸음 더 나가며 ‘나는 쓴다. 고로 존재한다’에 이르게 될테다.
쓰는 일은 읽는 일에서 시작한다. 평생에 걸쳐 책을 섭렵하면서 명문장들을 만났다.
왜 나는 읽었을까? 책 읽기는 현실도피의 한 방식이다. 책 읽기가 현실도피라면 이보다
더 우아한 방식의 현실도피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나는 책 읽기가 기적은 아니지만 놀라운 변화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좋은
책들은 고독속에서 흘러나오는 초월의 노래다.
좋은 책이 주르륵 보여주는 명문장들은 몇 방울의 피,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고독, 순도높은 침묵으로 이루어진다. 읽은 것들이 무지의 자각에 이르게 하고, 궁극에는 나약한 정신을 단련시키고 삶의 지침으로 오롯하였다. 나는 쉬지 않고 읽었기에 모호한 영혼과 불명확한 삶에 대해 몇 마디쯤은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읽은 것들을 다 기억하지 못한다. 읽은 것들을 다 기억할 필요도 없다.



1. 나는 다방커피가 좋다.

추운 날 청량리역 광장 시계탑에서 약속했던 여자친구를 기다릴 때, 마침내 여자친구가 와서 커피 한 잔을 자판기에서 뽑아 같이 나눌 때, 둘의 입김과 뜨거운 커피에서 모락모락 오르는 김이 서로 섞일 때, 그런 한 모금의 커피맛은 오래 기억된다. 그 여자친구가 납득 안되는 이유로 떠났을때에도 역시 무엇이 그 죽을만큼
허탈한 상실감과 외로움과 억울함을 위로해주는가, 원두커피일까? 단연코 아니다. 에스프레소도 비싸고 독하긴 하지만 뜨겁고 달고 쓴 자판기커피만이 그 크나큰 상실감과 외로움과 억울함을 달랠수 있다.
★★ 뜻풀이
으외로 ‘다방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달달한 커피에 많은 사람들이 위안을 받는다. 자판기에서 쉽게 뽑아 먹을 수 있는 ‘다방커피’는 늘 우리 곁에 있다. 죽을만큼 외로울때나 철야농성할때도 우리 곁을 지킨
것은 ‘다방커피’였다.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리-티.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 롤, 리, 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롤리타) 김진준 옮김, 문학동네 2013. 17쪽

밀봉된 운명의 불가해성을 여는 첫 문장들! 가장 잊을 수 없는 소설의 인상적인 문장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여는 첫문장이다. 영원히 붙잡을 수 없는 것을 붙잡으려는 자의 덧없는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여는 첫문장으로 이보다 더 완벽할 수는 없다. 검고 숱이 많은 눈썹을 가진 험버트씨는 가련하다. 자기의 환상을 뭉쳐 만든 요정에 홀려 인생을 망쳐버리니까! ‘롤리타’는 빛이자 불이고 뜨거운 죄의 시작이다. 불을 붙인 것은 욕망일까, 혹은 사랑일까?


2. 아버지의 마음

김현승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3. 나를 치유하는 글쓰기
글쓰기는 과녁을 제대로 맞히기 위해 조준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전율이 가득하며, 활시위를 당길 때처럼
흥분되는 순수한 과정이다. 창의력이라는 과녁에 명중시키는 것, 지평선에서 어른거리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해줄 문장을 찾는 것, 좋은 문장은 좇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지만 좆는 그 자체, 곁눈질로 흘낏 보게 되는 것들, 그것들 역시 가치 있는 것들이다. 나는 글이 잘 쓰일때를 좋아하지만, 글을 쓰고 있는 그 순간을 사랑하기도 하다.

4. 호미예찬
내가 마당에서 흙 주무르기를 좋아한다는 걸 아는 친지들은 외국 나갔다 올 때
곧잘 원예용 도구들을 선물로 사오곤 한다. 모종삽, 톱, 전지가위, 갈퀴 등은 다 요긴한 물건들이지만 너무 앙증맞고 예브게 포장된게 어딘지 장남감 같아 선뜻 흙을 묻히게 되지를 않았다. 그래서 전지가위 외에는 거의 다 사용해보지 않고 다시 선물용으로 나누곤 했다
내가 애용하는 농기구는 호미다. 어떤 철문전에 들어갔다가 호미를 발견하고 반가워서 손에 쥐어보니 마치 안겨오듯 내 손아귀에 딱 들어맞았다. 철물전 자체가 귀한 세상에 도시의 철물전에서 그걸 발견했다는 게 마치 구인을 만난 것처럼 반갑고 감동스러웠다. 호미는 남성용 농기구는 아니다. 주로 여자들이 김맬 때 쓰는 도구이지만 만든 것은 대장장이니까 남자들의 작품일 터이나 고개를 살짝 비튼 것 같은 유려한 선과, 팔과 손아귀의 힘을 낭비없이 날 끝으로 모으는 기능의 완벽한 조화는 단순 소박하면서도 여성적이고 미적이다
호미질을 할때마다 어떻게 잘만들었을까 새롭게 감탄한다.

5. 옛날 국수가게
정진규 천년의 시작 2004년, 42쪽
햇볕 좋은 가을날 한 골목길에서 옛날 국수가게를 만났다. 남아 있는 것들은 언제나 정겹다. 왜 간판도 없느냐 했더니 빨래 널 듯 국숫발 하얗게 널어놓은게 그게 간판이라고 했다. 백합꽃 꽃밭 같다고 했다. 주인은
편하게 웃었다 꽃히우고 있다. 꽃밭은 공짜라고 했다.

★★뜻풀이★★
골목길에는 햇빛이 끓고 어디서 왔는지 알수 없는 정적이 오글오글하다. 시간이 오래 멈춰 서 있었던 듯
거기에 ‘옛날’이 고스란이 있었다. 그 골목길에 간판도 없는 국수가게가 있었다. 하얀 국숫발이 햇볕 속에서
마르고 있었다.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먼저 ‘하얗게’라는 형용사가 눈부시게 들어왔다. 매화 흰꽃, 바람에
펄럭이는 옥양목 빨래, 조선의 달항아리 , 여름 하늘의 새털구름들 , 저고리 앞섶에 가려진 젊은 엄마의 젖가슴...이것들은 다 하얗다. 하에서 정겹고 서글프다. 하얀것들은 빨리 더러워지고
빨리 사라지는 까닭이다. 내 안이 평화와 기쁨으로 충만해서 바깥 삶도 더불어 고요했을 때 아내의 손을 잡고 ‘옛날의 국수 가게’로 국수를 한그릇씩 사먹으러 가곤 했었다. 얼굴에 기미가 낀 아내의 배속에는 어린 것이 자라고 있고, 골목길 한뼘 화단에는 파꽃이 하얗게 피어 있곤 했었다. 그때는 내 삶의 안쪽도 하얘서 오동꽃 지는 저녁이나 빗소리 몇줄 귀를 밝히는 새벽녘에도 아무 이유도 없이 가슴이 아리고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다.


6. 제목 : 두 번은 없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끝과 시작>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7. 제목 : 칼자국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 2007. 151-152쪽

어머니의 칼끝에는 평생 누군가를 거둬 먹인 사람의 무심함이 서려 있다. 어머니는 내게 우는 여자도 , 화장하는 여자도, 순종하는 여자도 아닌 칼을 쥔 여자였다
건강하고 아름답지만 정장을 입고도 우묵을 우적우적 먹는 , 그러면서도 자신이 음식을 우적우적 씹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촌부, 어머니는 칼 하나를 25년 넘게 써왔다. 얼추 내 나이와 비슷한 세월이었다
썰고, 가르고, 다지는 동안 칼은 종이처럼 얇아졌다. 씹고 , 삼키고, 우물거리는 동안 내 창자와 내 간, ㅅ힘장과 콩팥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나는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과 함께 그 재료에 난 칼자국도 함께 삼켰다.
어두운 내 몸속에는 실로 무수한 칼자국이 새겨져 있다. 기관들이 다 아는 것이다. 나는 ‘가슴이 아프다’는 말을 물리적으로 이해한다.

8. 제목 : 봄풀들
김훈 <자전거여행> 문학동네, 2014년 23-25쪽

봄풀들의 싹이 땅위로 돋아나기 전에, 흙 속에서는 물의 싹이 먼저 땅위로 돋아 난다
물은 훌이 나아가는 흙속의 길을 예비한다. 얼고 또 녹는 물의 싹들은 겨울흙의 그 완강함을 흔들고
풀어진 흙 속에서는 솜사탕 속처럼 빛과 물기와 공기의 미로들이 퍼져나간다. 풀의 싹들이 흙덩이의 무게를 치받고 땅위로 올라오는 것이 아니고 흙덩이의 무게가 솟아오르는 풀싹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풀싹이 무슨 힘으로 흙덩이를 밀쳐낼 수 있겠는가. 이것은 물리현상이 아니라 생명현상이고 역학이 아니라 리듬이다. 풀싹들은 헐거워진 봄 흙속의 미로를 따라서 땅위로 올라온다.
흙이 비켜준 자리를 따라서 솟아오르는 것이어서, 봄에 땅이 부푸는 사태는 음악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