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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꽃이 피는 좋은글 담다

병든 중년을 치유한 그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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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대 등대박물관

이글은 2010년 당시에 내가 다니는 회사에 자유게시판이 있었다. 그곳에 많은 직원들에게 좋은 글을 소개하는 난이 있어 올렸던 글이며, 좋은글들을 모아놓은 글이다, 언젠가 책을 만들어 우리 아이들에게 줄려고 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마음에 꽃이 피는 좋은 글 담다"의 좋은글은 대부분 그런글들이다..^^

언젠가 이 글들을 한번 봤음은 좋겠다. ..~~......

 

 

병든 중년을 치유한 그림 - 한 줌의 행복

행복한 인생 5월호에서 내용 인용

 

벼랑에 떨어져 몸이 마비된 사람이 있었다. 필사적인 재활훈련으로 그는 몸을 조금 움직일 수 있게 되었는데 그즈음 어느 백화점에서 열린 그림 전시회에 가게 되었다.

 

그 사람은 전시작품들을 보고 자신도 그림을 그리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다.

그림을 그리기에는 다소 무리인 것 같은 신체조건에서도 멈추지 않고 연필을 놀렸고, 마비증세도 점점 완화되었다. 이 사람이 본 그림은 바로 다마무라 도요오의 작품들이었다.

다마무라의 작품에는 이상한 힘이 있는 것 같다. 지방의 어느 백화점에서 전시회를 열었을 때

자폐증을 앓던 여자가 다녀가더니 갑자기 말문이 터지고 성격이 밝아졌다고 한다. 중병으로 오랫동안 병원신세를 지던 어떤 청년은 다마무라의 작품들을 보고 뭔가에 사로 잡힌 듯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고 결국 그림 한 점을 구했다. 석류를 그린 다마무라의 그림을 사간 어떤 사람은 그림 덕분에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않던 임신이 되었다며 감사 인사를 전해오기도 했다.

 

붉은 열매가 쏟아져 나오는 석류는 자식이 생긴다는 믿음이 있는 열매다. 사실 그림은 다마무라가 자기 자신을 위해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원래 글을 쓰는 사람이다.

무려 100권에 달하는 책을 써냈다. 글에만 너무 매달렸던 것일까? 마흔둘의 어느 날 그는 생명을 토해 내듯 엄청난 피를 입으로 쏟아낸다. 무려 2.5리터나 되는 양이었다.

얼마 후 증세가 완화되어 퇴원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다른 문제가 있었다. c 형 간염에 걸린 것이다. 다량의 수혈을 받다가 전염된 것이었다.

한 동안 병원에서 요양하다가 집으로 돌아와서도 간염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급성에 만성으로 돌아섰을 뿐이었다. 쉽게 피로를 느끼게 된 탓에 그동안 즐겼던 테니스나 와인을 멀리해야 했다. 그렇다고 매일 하루 종일 누워 있을 수많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고등학교 때까지만 미술부에서 활동하며 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그로부터 무려 사반세기가 흘러 다시 붓을 쥐고 싶어 진 것이었다.

첫 작업은 유리병과 접시 등이 놓인 식탁 위의 풍경을 그림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6호짜리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무려 한 달이나 걸렸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잠을 줄여가며 싸우듯 그림에 매달렸다

이어 44호 캠버스에 호박을 옮기는 작업에 들어갔다.

아내가 점점 잔소리의 수위를 높였지만 다마무라는 멈추지 않았다. 그즈음 병원 검사 결과를 보니 간염 증세가 상당히 호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림에 몰두하는 동안 몸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만성간염도 안심할 수만은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간경화로 이어지고 또 간암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한동안 다마무라의 그림은 어둡기만 했다. 시든꽃, 썩어가는 과일 마른 정물들을 주로 화폭에 옮기고 있었다. 아름다운 꽃을 화사하게 그리는 것은 어쩐지 해낼 수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새로 그림을 시작하면서 유화를 선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유화는 어두운 그림을 그리기에 적합한 방법인 것이다. 하지만 얼마 후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그림은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음가짐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당시 그는 어쩔 수 없이 간암이 오더라도 그때까지 20년 정도 더 살면 충분하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이웃에게서 받은 빨간 사과를 모델로 수채화 작업을 시작했다. 새하얀 종이 위에 그린 빨간 사과를 보고 있으니 어쩐지 간염을 이겨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로 글만 쓰다가 25년 만에 다시 붓을 잡았을 때,, 그림 실력은 어땠을까, 그것은 마치 자전거 타기와 비슷했다. 자전거 타는 법은 한번 익혀 놓으면 절대 잊지 않는다. 오랜만에 다시 접한 그림 작업도 잠시 그 감을 되찾는 시간만 필요했을 뿐 붓과 손이 금세 서로 익숙해졌다.

다마무라가 좀 놀란 것은 예전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리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다.. 정신적인 성숙은 어떻게든 표현될 수밖에 없는 것인지,, 보다 완성도 높은 그림이 나타났던 것이다.

우리는 나이를 먹으면 이제 젊었을 때처럼 할 수 없다며 잃어버린 젊음을 한탄하지만 반대로 그것은 젊었을 때는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을 기뻐하고 싶다

한번 그림에 몰입하면 그는 세상을 잊는다. 보이는 것은 오직 붓과 화판뿐이다. 그래서 붓을 씻는 물컵을 무심코 쏟지 않도록 작업대 멀리 두어야 한다. 작업하면서 마시려고 커피나 와인을 갖다 두기로 하는데 역시 그림은 망치지 않도록 그림보다 낮은 곳에 높아둔다. 그래도 때로 글 미에만 정신이 팔려 붓을 씻은 집의 물을 마시기도 한다.

그뿐 아니라 붓을 씻는 시간도 아까워 때로 물감이 묻은 붓을 입으로 빨고 물감을 묻히기도 한다.

매일 그림을 그려대면서 작품수가 늘자, 액자에 담긴 작품들이 하나둘씩 집안에 걸렸다. 나중에는 이미 걸려 있던 다른 화가들의 작품들은 치워도 공간이 부족했다.

...............

태종대 주전자 섬

 

에세이 작가에 이어 다마무라는 화가로서도 전문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여전히 글을 쓰는 그는 그림 작업만의 장점을 알게 된다. 그림을 감상할 때 우리는 시각적인 능력을 순간적으로 활용하지만 글을 머리로 깊이 이해해야 한다.

즉 글은 그 장르를 떠나 매우 논리적으로 써야 하기 때문에 나이가 너무 들면 잘 쓸 수 없는 반면 그림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나름대로의 표현력을 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어린아이 같은 그림은 살아남을 수 있지만, “어린아이 같은 글은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다마무라는 간염을 계기로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그것은 숨은 재능을 다시금 끄집어냈다..

급성간염에서 만성으로 그리고 거의 회복의 단계까지 이는 다마무라는 그림에서 치유의 힘을 얻었다. 이제 그는 자신의 작업 공간에서 매일 조용히 그림을 그리다 언젠가 찾아올 삶의 마지막을 맞으려 한다.

혹시 내가 백 살까지 산다고 하면, 백 살의 후지산을 확실히 알지는 못하더라도 어쨌든 길한 그림이니, 침을 흘려 낙관을 찍으면 서명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농담이지만 어쨌든 그림을 죽을 때까지 계속 그릴 수 있다. ” 김승일

참고도서 : 그림 그리는 남자 (다마무라 도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