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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뒤바꾼 가짜뉴스(1) - 독서감상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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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감상문

도서명 세계사를 뒤바꾼 가짜뉴스
지은이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장하나 옮김 출판사 매일경신문사


   이 책 제목을 보면서 한번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지금도 인터넷을 통해서 가짜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다.
어느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수많은 정보속에 우리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을 보고 적어도 우리는 어떤 사건이 인터넷에 떠오르면. 다시한번 생각해보고
뒤돌아보고 한번 더 꼼꼼히 살펴봐야 되겠다.
선의의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 지금도 여전히 그 선상에 있다.
혹시나 우리중에서 가짜뉴스에 피해자가 있을지 모른다. 여기나오는 내용은 지금까지 역사상에 나오는
사건이 혹시 가짜가 아니었을까 하는...그런 내용들이다.
보통 알고 있는 내용과 달라서 약간은 혼란스럽다. 여러분도 한번 살펴보기 바란다.
그렇구나. 새로운 앎을 통해서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사람들에게 먹잇감을 줘서는 안된다.

보통 일반사람들은 그냥 인터넷에 나오는 뉴스거리를 진위여부도 없이 그냥 놀잇감으로 즐기는 경향도 많다
그것에 희생당하는 선의의 당사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누가? 도데체 왜 ? 루머를 퍼뜨리는 가!
거짓으로 대중을 현혹시킨 36가지 이야기 그중에...~~

5,000년 세계사 속에서 독재자와 반체제 포퓰리스트는 “거짓말= 가짜뉴스”가짜 뉴스”를 이용하여 다양한 정보를 조작하고 대중을 선동함으로써 세상을 움직여왔다.
근현대에 들어 널리 국민국가가 전파되면서 대중의 동의 없이는 포퓰리즘(대중주의,(대중주의, 인민주의)과 독재 행각이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가짜 뉴스 같은 정보의 조작 때문에 정보의 조작 때문에 민주주의는 점차 형식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특히 세계대공황으로 사회가 불안정해져 대중의 삶이 힘겨워지고 사회불안이 증폭되자, 포퓰리스트나 독재자가 기다렸다는 듯 자신들의 존재를 마구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온갖 모략으로 대중을 선동하며, 국제정치를 뒤흔들었다.
이탈리아의 파시즘, 독일의 나치즘, 소련의 스탈리니즘 등은 교묘한 프로파간다(선전전)를 통해 대중을
칭칭 옭아매며 세계를 참혹한 전쟁의 소용돌이로 내몰았다
미국과 영국 같은 자유주의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스스로를 민주주의 옹호자로 내세우며 뉘른베르크 재판 사관과 극동 군사재판 사관 등의 선전을 도모했다.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인터넷 보급으로 정보의 과잉 시대가 되었다. 요즘에는 보이지 않는곳에서 데이터가 수집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감사의 대상이 되는 그런 시대에 접어들었다
요즘에는 보이지 않는곳에서 데이터가 수집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감시의 대상이 되는 그런 시대에 접어들었다..
인터넷의 편리함은 부정할 수 없지만, 인간이 생각해낸 정보전달 및 선전도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기능이 과다한 인터넷은 때로 폭주하기 마련이다.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차곡차곡 쌓아온 인터넷은 어느 틈엔가 세계사가 애써 키워온 인권과 국가 시스템을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괴물로 성장해버렸다
그래도 20세기말까지는 평탄한 시기였고, 현재는 정치와 경제의 세계화, 급격한 인터넷의 보급, 사이버공간에서의 전쟁이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1. “천명”을 증명하기 위해 편찬된 방대한 역사서

천명을 증명하고 천제의 뜻에 따라 왕조가 세워졌다는 증거로 삼은 것이 역사서다.
역대 왕조들은 스스로 ‘천명’에 따른 왕조임을 보이기 위해 사관에게 왕조의 성립을 설명하는 역사책을 쓰게 하고 민중이 알아듣기 쉽도록 각색하여 후세에 남겼다
불편한 부분은 삭제하고 지매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대단히 이데올로기적인 역사서였다
그러다 보니 종종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식의 과장된 이야기가 기록되었다.
중국이 실질적인 자본주의 경제로 전환하면서 일당 독재를 유지하는 정책을 취할 때, 지도자 장쩌민은 사회주의 교육에서 애국주의 교육으로 바꿨다
그러한 과정에서 항일전쟁을 강조하며 일본은 악당, 중국 공산당은 영웅이라는 도식을 선전하였다
참고로 중국에는 신 왕조가 전 왕조의 역사를 각색하여 자신들의 지배를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천제가 여러 왕조를 인정하였음을 보여주는 <24사>라는 역사서가 현존하는 것이다.


남원시 광한루의 풍경




2. 대중주의를 가장한 엘리트, 페리클레스

페리클레스는 페르시아군이 아테네에서 물러난 뒤 상층 시민과 대중을 화해로 이끈 장본인이다.
그는 교과서 속에서 대단한 위인으로 그려지며 아테네 민주정치의 전성기를 이룩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무산 시민이 살라미스 해전에서 눈부신 활약을 떨쳤기 때문에 페리클레스는 이들 대중의 정치참여를 어쩔 수없이 인정해야만 했던 것으로 보인다.
명문가 출신인 페리클레스는 파르테논 신전 건설이나 도시와 만을 연결하는 성벽의 건설 같은 대규모 토목 공사를 통해 대중에게 일거리를 제공하고 , 교묘한 방식으로 대중의 지지를 얻어 독재자가 되었다
그는 ‘민주정’이라는 명분을 미끼로 대중을 교묘히 조종한 셈이다
대중을 조종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일을 주고 우선적으로 경기를 회복시키는 것이 대전제였다. 그때 페리클레스가 끌어 쓴 자금이 바로 페르시아군 침략에 대비해 마련한 군사동맹 자금이었다
각 도시 국가들이 안위를 위해 델로스에 차곡차곡 모아둔 돈을 페리클레스가 돌려써버린 것이다. 대중을
돈으로 매수했다고 하면 좀 심한 말 같긴 하지만 , 어찌됐든 그는 풍부한 동맹 자금으로 아테네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이것 보니까 생각난다. 지금 재난지원금은 7.23일 기준으로 전국민의 88% 25만원을 준다고 한다. 도데체 돈이 어디있는지 모르겠다. 전에는 국민연금이나 공무원 연금에서 돈을 꺼내가지고 마음대로 썼다
마음대로 안되니 지금은 부동산 양도세나 취득세, 부동산을 받은 사람들이나 돈번곳에 과세있다는 식으로 한푼이라도 세금으로 징수하고 있다. 이 글을 보니 문득 그생각이 들었다.
하긴 빚을 내면 된다. 국채발행하고..나중에 우리 후손들이 ..그 빚을 감수해야 한다. ..어쩔수 없긴하다. 지금은 정말 힘드니까..ㅠㅠ


페리클레스는 무려 15년 동안이나 포퓰리즘을 가장한 엘리트주의를 기반으로 실질적인 독재정치를 펼쳤다. 하지만 종국에는 외교에 실패하고아테네를 스파르타와 싸움,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내몰았다
역사가 투키데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는 페리클레스의 연설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있다

“한 개인의 걸출한 재능이 세상에 알려지면
평등한 윤번제를 배제하고 , 세간의 인정에 따라 그 사람의 능력에 걸맞은 대우를 하며 높은 지위를 부여할 수 있다 “
이처럼 페리클레스의 엘리트 중심 사상이 깃든 말속에는 자신이 곧 엘리트이며 자신의 판단만이 무조건 옳다는 강렬한 자부심이 깃들어 있다.
펠리클레스는 전쟁이 발발하고 2년째 되던 해에 흑사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그후로 능수능란한 사전 교섭으로 아테네 대중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정치가가 출현하지 않았다
엘리트층에서 유능한 정치가가 나오지가 않은 것이다.

3. 페리클레스,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지다
기원전 431년 , 아테나를 중심으로 한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펠로폰네소스 동맹 사이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터졌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고대 그리스 전역을 휩쓴 싸움으로 기원전 404년까지 계속되었다.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난 이유를 거대국이 된 아네테가 스파르타에 공포심을 불어넣으며 전쟁을 강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세계사에서 패권을 장악한 국가는 장소 불문하고 자신들의 패권을 노리는 다른 이들의 출현을 어떻게든 막으려 했다..

트럼프가 중국에 관세 폭탄을 내린 것도,, 화웨이를 제재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은 패권국과 신흥세력이 첨예하게 대립하다가 끝내 전쟁까지 이르게 되는 현상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고 표현한다
큰 전쟁이 시작되면 국가는 공황상태에 빠지고 엘리트층이 견고한 지배체제가 무너져 내리면서 대중을 선동하는 포퓰리즘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결국 엘리트층과 야심 가득한 포퓰리스트는 서로 자신이 옳다고 주장만 하다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파멸로 치닫고 말았다.

☞ 2030년 쯤 미국과 중국이 어떻게 바뀔까 궁금하다. 정말 세계가 서세동점(西勢東点)을 할까


마리앙투아네트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고 말한 적이 없다? ~~








3. 흡혈귀 드라큘라는 왈라키아의 왕이었다

1897년 아이랜드 작가 브램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는 순식간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도 수없이 제작되었다.. 그래서 드라큘라는 흡혈귀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이 이야기의 줄거리는 루마니아의 트란실바니아 지방에 드라큘라 백작이 살았는데 , 그가 죽은 후에도 살아있는 인간의 싱싱한 피를 팔아먹으며 근근이 살아가다가 인간의 피를 찾기 위해 런더능로 간다는 내용이다. 그는 불그스름한 눈에 커다란 송곳니가 있는 기괴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실제 드라큘라는 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루마인아에서는 오스만 제국의 침략에 맞서 싸운 위한 영웅이자 정치가로 칭송받고 있다.

현재 루마니아 남부의 왈라키아는 1370년 오스만 제국과 처음 충돌한 이후 100년 동안 침략과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왈라키아 공국의 왕 블라드 체페슈(드라큘라)는 1431년에 태어났다.
1431년 터키군이 최초로 트란실바니아에 침입했을 때로,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가 드라큘라의 아버지를 터키군과 싸우는 용의 기사로 서임한 해였다. 드라큘라라는 이름은 그의 아버지가 용(드라클)으로 불렸기 때문인데, 드라클에는 악마라는 뜻도 있다. 그 점도 드라큘라 전설을 만들어낼 때 이용되었다

드라큘라는 11세에 오스만 제국의 인질이 되었다. 터키에서 5년동안 지내면서 오스만 제국의 군사훈련을 받으며 터키어를 습득했다
훗날 왈라키아로 돌아온 드라큘라는 진격해오는 터키군에 심리전을 이용하여 야간 기습작전을 거듭 펼쳤다. 그리고 포로로 잡은 군사들을 꼬챙이에 꿰어 잔혹하게 살해하며 철저하게 응징했다. 그 때문에 일면 블라드 꼬챙이 공(公)으로 통하며 터키인들의 두려움을 샀다.
통나무 막대기의 끝을 뽀죡하게 깎아 인간의 몸통을 꼬챙이에 꿰는 형벌이었다. 하지만 이 형별은 드라큘라가 유독 잔인해서가 아니라 중세 유렵에서는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처형방식이었다.

드라큘라는 45세에 암살당할 때까지 한결같이 터키군의 침략에 맞서 싸웠다. 그는 우선 지역전체를 불태운 다음, 그 틈을 타 적진을 습격하여 맹공격을 퍼붓는 루마니아 전통적 전술을 구사했다
특히 1462년 6월, 왈라키아의 수도를 점령한 오스만 제국의 술탄 군대를 쉬지 않고 습격하는 방법으로 괴롭힌 끝에 마침내 격퇴한 일화가 유명하다
그 일로 블라드 꼬챙이 공의 이름은 전 유럽에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동료의 배신으로 드라큘라는 흡혈귀의 근원이 된 굶주린 독재자가 되고 만다.

2부 계속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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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뒤바꾼 가짜뉴스(2) - 마리앙트와네트 ☞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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