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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우물을 깊이 파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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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우물을 깊이 파라. -다산 지식 경영법(정민지음)내용중에서

 

조선 후기의 실학자 위백규(魏伯珪), 1727~1798)김섭지에게 줌(與金燮之)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 책을 읽을때, 능히 담긴 뜻을 깊이 궁구하지 않고, 다만 구두(句讀)와 풀이만 입과 귀로 섭렵하므로 마침내 확연한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그래서 생각을 펼쳐 글로 지은것도 또한 절로 이와 같게 된다. 책을 읽을때 단지 글로 글을 읽을뿐인 사람은 끝내 오묘한 경지에는 나아갈수 없다.” 책따로 나따로 노는, 입과 눈만의 독서를 경계한 것이다. 나아가

그는 독서를 다음과 같이 우물파기에 비유했다.

 

글을 지으려는 사람은 먼저 독서의 방법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우물을 파는 사람은 먼저 석자의 흙을 파서 축축한 기운을 만나게 되면, 또 더 파서 여섯자 깊이에 이르러 그 탁한 물을 퍼낸다. 또 파서 아홉자의 샘물에 이르러서야 달고 맑은 물을 길어낸다.

마침내 물을 끌어올려 천천히 음미해보면, 그 자연의 맛이 그저 물이라 하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또다시 배불리 마셔 그 정기가 오장육부와 피부에 젖어듦을 느낀다.

그런뒤에 이를 퍼서 글을 짓는다.

이는 마치 물을 길어다가 밥을 짓고, 희생(犧牲)을 삶고, 고기를 익히며, 또 이것으로 옷을 빨고, 땅에 물을 주어 어디든지 쓰지 못할 데가 없는것과 같다. 고작 석자 아래의 젖은 흙을 가져다가 부엌아궁이의 부서진 모서리나

바르면서 우물을 판 보람으로 여기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

위백규, 김섭지에게 줌(與金燮之),존재집(存齋集)

 

 

석자를 파면 축축한 흙이 나오고 여섯자를 파면 탁한 물이 나온다. 여기서

석자를 더 파들어가야 달고 찬 샘물을 얻을 수 있다. 이 샘물은 가뭄에도 절대로 마르는 법이 없다. 먹는 물과 빨랫물로 쓸수가 있고 농사짓는 물로도 쓸수가 있다. 하지만 석자만 파다 말면 고작해야 부뚜막 바르는 데나 쓸수 있는 축축한 흙을 얻는데 그칠뿐이다. 바른 독서는 그저 글의 껍질만 읽어 축축한 흙을 얻는데 만족해서는 안 되고 언제 어디서나 쓸 수 있는 달고 찬 샘물을 길어 올리는 데 이르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한형석 생가..터..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