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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꽃이 피는 좋은글 담다

연암 박지원의 글쓰기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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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보듯 너를 본다..나태주시집의 뒷표지..^^

 

이글은 2013년 당시에 내가 다니는 회사에 자유게시판이 있었다. 그곳에 많은 직원들에게 좋은 글을 소개하는 난이 있어 올렸던 글이며,  좋은글들을 모아놓은 글이다, 언젠가 책을 만들어 우리 아이들에게 줄려고 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마음에 꽃이 피는 좋은 글 담다"의  좋은글은 대부분 그런글들이다..^^

언젠가 이 글들을 한번 봤음은 좋겠다. ..~~......

 

 

싱싱한 푸른대는 그대의 모습

듬직한 바윗돌은 그대의 말씀

부채를 펼쳐들때 그대 위해 그릴제

손목을 잡고 나니 마음은 하나

 

열하일기 내용중에서 한시인용

 

 

옛글에서 읽는 오늘,

 

경향신문 2013. 5.11. 김태희 실학연구소 21 대표

 

연암 박지원은 소단적치인이란 글에서 글쓰기를 전쟁에 비유했다.

글자()는 병사요 뜻()은 장수()

이때 활용한 고사가 장평대전이었다.

 

그 이야기는 대략 다음과 같다.

중국의 전국시대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여 장평에서 대치했다. 조나라에는 염파조사라는 뛰어난 장수가 있었다.

세월이 흘러 조사는 죽고, 노장 염파만 남았다.

진나라의 공격에 염파는 방벽을 굳게 하고 응전하지 않았다.

원정군은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하다.

진나라는 초조했다. 계책을 내어 소문을 퍼뜨렸다. “진나라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조괄이 장수가 되는 것 뿐이다.”

조괄은 죽은 조나라 명장 조사의 아들이다. 조사가 살아 있을 때 부자간에 병법을 토론한 적이 있는데, 조사가 아들 조괄을 당할 수가 없었다.

조괄은 스스로 병법에 뛰어난다고 여겼지만 조사는 인정하지 않았다. 조사의 아내가 그 까닭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전쟁이란 사람이 죽는 일이요 그런데 괄은 아주 쉽게 말한다오, 장수가 된다면 반드시 군대를 망칠 것이오.”

조괄이 병법 이론에 밝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책속의 지식이 불과했다.

상황변화에 적절히 대처할 능력이 없었다.

 

또한 병사들과 함께 생활했던 아버지와 달리 조괄은 병사들 위에 군림했고, 재산을 모으는데 힘썼다. 조나라왕은 염파의

수비 작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터라 이간책에 현혹되었다.

 

신하가 반대했고, ‘조괄의 어머니가 글을 올려 만류했지만,

왕은 기어코 염파 대신 조괄을 장수로 삼았다.

조괄이 장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진나라 장수 백기는 군사를 보내 패해서 달아나는 척했다 그리고 추격해 온 조나라 군사의 후방을 끊어 고립시켰다.

식량보급로가 끊긴 군사들은 40여일을 굶었다.

조괄은 전사했고, 수십만 병사들은 항복했다. 잔혹한 장수 백기는 이들을 모두 구덩이에 생매장해버렸다.

조나라는 장평대전에서 45만 군사를 잃었다.

전쟁에서 장수는 결정적이다. 연암은 이를 글쓰기에 연결했다.

 

장평의 병졸들은 용맹과 무기가 달라진게 없다. 그렇지만 염파가 장수일때는 승리하기에 충분했고, 조괄이 대신하자 자멸하기에 충분했다.

전쟁을 잘하는 자는 버릴 병졸이 없고, 글쓰기를 잘하는 자는

가릴 글자가 없다.

좋은 장수를 만나면 승리의 군대가 되듯, 이치에 맞는다면 평범한 말도 명문을 이룬다. 그러므로 글이 좋지 않은 것은

글자탓이 아니다. ”

 

글은 주제나 메시지가 중요하다.

그것은 길을 잃지 않고 요령껏 전달하는 것이 글쓰기 작업이다. 그런데 나는 글쓰기보다 장평의 장수와 죽은 병사들이 더 마음에 걸린다. 내가 길을 잃었나.

 

설빙 ,,,,망고.. 한숫갈...맛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