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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의 인물 , 준걸 "사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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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인물 108인 전에서 내용 인용,, 최용현 지음

 

수수께끼의 인물. 준걸(俊傑) “사마의

 

조조가 한중을 평정하고 군사를 돌리려고 했을 때 측근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유비는 서촉을 뺏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지금 쳐들어가면 능히 유비를 무찌르고 서촉까지 평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조조 군에서 주부(主簿) 일을 맡고 있던 사마의였다. 조조의 군사행동에 관해 그가 입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조조는 이미 한중을 얻었는데 어찌 또 촉을 바라겠는가 [[ 隴望蜀(득롱망촉)]하며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나 후에 한중을 유비에게 뺏기고 나자 , 조조는 사마의의 판단이 옳았음을 깨닫고 뼈저리게 후회했다.

 

사마의 (司馬懿), 자는 중달(仲達). 제갈량에 버금가는 지모를 가진

위의 군략가였다. 보통사람은 고개가 180도 뒤로 돌아가는 낭고상(狼顧相)을 가졌다고 한다. 조조는 이를 반골(反骨)의 상으로 보고 경계했다.

사마의는 강북을 평정한 조조가 내치에 힘을 쏟고 있을 때 발탁되었는데, 젊은 시절의 조조가 연상될 만큼 권모술수와 임기응변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차이점은 조조의 지모가 양성적인데 비해 그의 지모는 음성적이었다는 점이다. 음험했다는 얘기다. 그는 군략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였으나 조조는 그의 지혜와 야심을 경계하여 군사 일을 맡기지 않았다.

사마의는 조조의 아들 조비가 위 황제로 즉위할 때부터 차차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조비가 제위 7년 만에 죽고 그의 열다섯살 난 아들 조예가 위 황제로 즉위했다.

이 무렵 조정의 손꼽히는 중신이 되어있던 사마의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여 서량의 군사책임자를 자원했다. 조예가 이를 허락하니 그는 이제 변방에서 대군을 거느리게 되었다.

 

생전에 조조가, 사마의에게는 절대로 병권을 맡기지 말라고 했으나,

그의 손자 대에 이르러 이 금기가 깨진 것이다. 이때 사마의는 위 정벌을 계획하고 있던 촉의 제갈량이 사마의가 서량에서 반역을 꾀하고 있다.’고 퍼뜨린 유언비어에 휘말려 조예의 의심을 받아 다시 군권을 뺏기고 만다. 반간계(反間計)에 성공한 제갈량은 저 유명한 출사표를 바치고 위 정벌 길에 올랐다.

위에서는 하후무와 조진을 차례로 대장군으로 임명하여 제갈량의 촉군을 막게 했으나 계속 패퇴하였다.

위 황제 조예는 어쩔 수 없이 낙향한 사마의를 다시 불러 제갈량을 막게 하니 삼국지 최고의 두지장(智將)이 드디어 전선에서 맡붙게 되었다.

사마의가 제갈량 때문에 잃은 병권을 제갈량 덕분에 다시 찾게 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마의는 그를 닮아 영용(英勇)한 두 아들과 함께 전선에서 제갈량과 맞섰고 가정의 전투에서 제갈량의 심복 장수인 마속을 쳐부수며 첫 싸움에서 승리했다. 두 영걸은 여러 차례 소규모로 맞붙으며 지루한 대치를 계속했다. 한번은 사마의가 제갈량의 계책에 빠져 호로곡에 갇혀 불에 타 죽을 뻔했으나 때마침 소나기가 쏟아지는 바람에 살아난 적도 있었다.

그 후부터 사마의는 이기기보다는지지 않기 위한 전략으로 일관했는데, 그 때문에 부하들로부터 겁쟁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러나 제갈량을 상대로지지 않는 것이야말로 이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사마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제갈량이 없어지면 자신의 병권을 다시 뱃길 거라고 생각, 일부러 시간을 벌기 위해 전쟁을 오래 끌었다고 하는 견해도 있다.

 

 

수선화...^^

어쨌던, 사마의는 오직 지키기만 하며 버텨내다가 드디어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병이 들어 숨을 거두자, 나라를 지켜낸 공로로 원훈(元勳)이 되었다.

그 후 사마의는 요동에서 공손연이 연왕을 사칭하며 일으킨 반란까지

평정함으로써 이제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실력자가 되었다.

위 황제 조예가 술과 여색에 곯아 서른여섯에 죽자, 여덟 살 난 태자 조방이 황제로 즉위했다. 이때 조정에서는 황실의 친위세력인 조상과, 군벌세력인 사마의 간에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져 마침내 조상이 승리했다.

대권을 잡은 조상은 사마의의 병권을 다시 뺏어 버렸다. 사마의에 대한 황실 친위세력의 견제가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사마의는 다시 병을 핑계로 벼슬을 버리고 낙향, 두 아들과 함께

실의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황제 부럽지 않은 호사(豪奢)를 누리고 있던 최고 실권자 조상은 그래도 사마의의 존재가 부담스러워 사자를 시켜 그의 근황을 정탐해보게 했다.

이를 훤히 꿰뚫어 본 사마의는 머리를 풀어헤친 채 시녀들의 부축을 받으며 문병 온 사자를 맞았다.

사마의는 말을 잘못 알아듣는 척 자꾸 엉뚱한 소리를 하면서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사람처럼 연신 기침을 쿨룩쿨룩 해댔다. 누가 봐도

곧 죽을 늙은이었다.

사자가 돌아가서 본 대로 전하자 조상은 그것이 사마의의 노림수인 줄

모르고 완전히 마음을 놓았다.

그 늙은이가 곧 죽는다면 이제 내게 무슨 걱정이 있으랴!”

기막힌 연극으로 사자를 속인 사마의, 실권자 조상이 황제를 모시고

사냥을 떠나면서 궁궐을 벗어나자, 두 아들과 심복 장수 및 그를 따르는 군사들과 함께 비어있는 궁궐을 기습 점령했다.

그리고 호아 태후를 등에 업고 조상과 그의 심복들을 모두 잡아 목을 베니 하루아침에 권력은 다시 사마의의 것이 되었다. 쿠데타가 성공한 것이다.

그는 일생동안 뛰어난 전공(戰功)으로 인한 영예와 충성에 대한 의심 사이에서 부침을 거듭했다.

그는 나락으로 떨어질 때마다 특유의 지모를 펼쳐서 재기하곤 했다. 그는 상대가 강하다고 느낄 때는 시치미를 떼고 죽은 듯이 있다가,

기회가 포착되면 단숨에 상대를 해치우며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자손들을 위해 착착 준비를 했다.

후세의 사가들은 그를 시치미 떼기의 명수혹은 능청스럽게 지모를 펼치는 수수께끼의 인물로 평하고 있다.

또 군략의 측면에서는 결코 제갈량에게 뒤지지 않은 지휘관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가 죽은 제갈량의 재주에 감탄하며 말했듯이

사마의 또한 백 년에 한 두 명 나올까 말까 한 천하의 기재(奇才)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