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와 배신
브루투스는 시저를 찔렀다. 오다 노부나가는 죄 측근 아케치 미쓰히데의 칼을 맞았다.
린바오는 자기를 후계자로 지명한 마오쩌뚱을 암살하려 했다
전두환은 아버지라고 하던 박정희를 부정했고, 노태우는 자기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친구 전두환을 백담사에 보냈으며,
김영삼은 함께 손을 잡았던 노태우를 감옥에 보냈다.
호주아의 줄리아 갈라드 부총리는 2010년 자신의 정치적 멘토인 케빈 러드 총리를 쫓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역사는 이처럼 권력이나 무력을 동원해 정치적 스승, 동지,
주군을 배신한 기록으로 점철되어 있다. 배신없이는 역사의 페이지를 넘기기 어려울 정도이다
가장 최신의 사례는 이집트의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이 10개월 전 자기 손으로 임명장을 준 국방장관 엘시시의 쿠데타로 쫓겨난 것이다 엘시시가 “당신 스스로 물러나라, 군부의 최후통첩에 저항하지 말라”며 ‘반란’을 할때 무르시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 내 시신을 밟고 가라”
역사는 배신을 선악의 이분법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맥락과 조건이 그때그때 다르기 때문이다.
가령 나세르와 민주적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정권을 세운 아옌데 정부를 무너뜨린 육군 참모총장 피노체트의 쿠데타, 박정희의 쿠데타가 다 다르다. 역사적으로 반역이니 배신이니 하는 현상은 흔히 민심이 분열되었을때 발생한다.
그렇다면 엘시시는 배신자인가, 만일 역사에서 배신이 없었다고 생각해보자.오늘의 민주주의도 없었을지 모른다.
세익스피어는 희곡 <율리우스< 시저>에서 배신을 이렇게 찬양했다.
“ 왜 내가(브루투스)시저를 죽였는지 이유를 요구한다면 대답은 이렇습니다.
시저에 대한 나의 사랑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내가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시저가 죽음으로써 모두가 자유인으로 살기보다 시저가 살아서 모두가 그의 노예로 죽는 것을 원하십니까?
그가 행운을 타고났기에 그것을 존경합니다
그러나 그가 야심을 품었기에 나는 그를 죽였습니다.
그의 사랑에 대한 눈물, 그의 행운에 대한 기쁨, 그의 용기에 대한 존경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야심에 대해서는 죽음이 있습니다.”
아마 배신이 없었다면 문학도 죽었을 것입니다.
경향신문 -2013.7.6일 내용인용
여적(餘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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